단원님 안녕하세요!
추운 겨울 잘 지내고 계신가요?
코와단 13호로 인사 올립니다.💕
혹시 오랫동안 뜨개를 안 하다가 다시 시작한 적이 있나요?
혹은 망해서 풀었던 뜨개 작품을 한참 동안 내버려 두다 다시 코를 잡은 적은요?
어떤 경우이든, 그만두었던 것을 다시 하기란 쉽지 않죠.🥲 지루했던 마음, 좌절했던 마음을 회복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다면 전보다 더 단단한 마음과 숙련된 솜씨로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이번 뉴스레터에는 오랫동안 끊겼던 이야기를 다시 써서,
더 멋있어진 한림수직에 대한 인터뷰를 들고 왔어요.
약 20년 전 문을 닫은 브랜드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시 쓴 이야기, 함께 보러 가볼까요?✨ |
|
|
단원님 혹시 기억나시나요?
코와단 제9호에서 아란 무늬를 소개하면서 한림수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요.
90년대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문을 닫았던 한림수직이었지만, 2021년 리브랜딩되어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죠! 🙌
코와단은 한림수직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면 1️⃣옷 자체로써의 아름다움 2️⃣뜨개와 제주의 유산적 가치 보존 3️⃣슬로 패션과 지속 가능한 소비를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이 모든 가치를 아우르면서 리브랜딩을 했을까?🤔' 궁금했던 코와단이 한림수직의 브랜드 경험팀 PD님께 리브랜딩 스토리를 여쭤봤어요. |
|
|
코와단(이하 코):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
|
한림수직(이하 한): 한림수직은 1959년부터 2005년까지 성이시돌목장에서 키운 양모로 수편·수직 상품을 선보인 제주의 니트 브랜드입니다. 성이시돌목장의 기틀을 마련한 맥그린치(한국 이름 임피제, 1928~2018) 신부와 세 명의 아일랜드 수녀들의 도움으로 시작되었어요. 1950년대 제주에서는 물질 외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고 육지로 나가 돈을 벌다 사고를 당하고 했던 제주 사람들을 안타까워한 맥그린치 신부는 신앙을 전파하는 일보다 가난을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주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갈 방법에 대해 궁리한 끝에 맥그린치 신부는 면양 35마리를 사들여 성이시돌목장을 설립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고향 아일랜드의 수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아일랜드 어부들이 방한과 방수를 위해 즐겨 입었던 ‘아란 니트’를 만드는 기술을 제주 여성들에게 전수하게 됩니다. 이렇게 1959년 제주의 첫 로컬 패션&리빙 브랜드 ‘한림수직’의 신호탄이 울렸어요.
|
|
|
아란니트 기술을 전수해주신 아일랜드 수녀님들. |
|
|
한: 한림수직은 제주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내 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한 근대 산업의 방식을 시작했던 브랜드로 현재 성이시돌목장 운영의 바탕이 되었어요. 당시 한림수직과 연관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한림수직은 제주에서 경제뿐 아니라 문화·역사적으로 깊게 뿌리 내린 소중한 로컬 브랜드입니다.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이렇게 멋진 이야기가 담긴 한림수직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로 콘텐츠그룹 재주상회와 한림수직이 시작된 이시돌농촌개발협회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어요.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던 옛 한림수직의 제품을 복원하기 위해 과거 한림수직이 했던 방식처럼 이시돌목장의 양털을 깎고 그 양모로 실을 잣고 니트를 만들고 있답니다.
2021년에는 한림수직 시그니처 스웨터와 머플러, 숄더백을 제작하였고, 2022년에는 시그니처 카디건, 방울모자, 미니 머플러를 제작했어요. 3년 차를 맞이한 2023년에는 원사의 고급화를 강조하며 양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양모를 채취하는 ‘뮬징프리’ 방식의 울로 한림수직만의 원사를 개발하는 과정까지 거쳤어요. 여기에 한림수직 장인의 디테일을 더해 시그니처 카디건, 무지개 담요를 출시했어요.
특히 올해는 옛 한림수직의 수직 방식을 되살리기 위해 한림수직 장인이 직접 손뜨개로 작업하는 한림수직 장인라인을 시작하였고, 장인의 기술을 잇는 수제자들의 상품들까지 출시하게 되었어요. 한림수직 실을 그리워하는 니터들을 위해 한림수직 전용 실과 한림수직 오리지널 도안이 포함된 DIY 키트도 출시되어 수직 라인을 더욱 다양하게 제시하며 한림수직의 복원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
|
|
코: 2005년에 문을 닫은 한림수직을 재생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
|
한: 한림수직은 뛰어난 품질의 상품과 함께 매력적인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브랜드예요.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브랜드를 되살리는 작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생기게 되죠. 자칫 오리지널 브랜드의 명성에 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재생 프로젝트 첫해부터 많은 신경을 쓴 부분은 옛 한림수직의 방식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한림수직은 이시돌목장의 양털을 직접 깎고 실을 잣고 이를 통해 다양한 니트 상품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도 이시돌목장의 양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쓰임이 없어 버려지고 있던 이시돌목장의 양모는 이번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100% 사용되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이시돌목장에 남은 양은 약 50~60마리뿐이에요. 1,000여 마리가 있었던 전성기에 비해 개체 수가 많이 줄었고, 그래서 상품 제작을 위해 충분한 양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양의 개체 수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을 계획입니다. 목장의 운영을 생태학적으로 바라보며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자연스럽게 성장시키고자 해요.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이런 부분과 맞닿아 있었어요. 합성섬유, 저가의 중국산 양모 등은 우리나라 양모 산업 전체를 쇠퇴하게 만들어서 국내에서 양모를 실로 만드는 작업 공정을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수소문 끝에 찾아낸 양모 세척 공장은 우리나라에서 남은 마지막 공장이었죠. 그런데 저희가 가진 양모의 양이 공장을 돌리기에 충분한 양이 아니어서 작업 일정을 맞추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척 후에도 최대한 불순물을 없애고 최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직접 골라내는 작업을 거쳤어요. 재생 프로젝트 초반에는 왜 이렇게 하느냐, 손쉽게 수입해서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한림수직 상품 복원의 시작은 제주의 양모를 국내에서 작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공장 작업자분들께 한림수직의 이야기, 재생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며 부탁드렸죠. 현재는 이 모든 과정을 충분히 공감하시어 한림수직을 응원하는 사이가 되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 과정이 재생 프로젝트 3년 차인 올해도 생기게 되었어요. 올해는 한림수직 직조 라인의 대표 주자인 한림수직 담요를 복원했는데요. 이 담요의 제작 방식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 옛 한림수직 담요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는 공장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재생 프로젝트 첫해처럼 또다시 전국을 수소문하는 과정을 거쳤고, 긴 시간 끝에 옛 한림수직 담요를 100%에 가깝게 복원한 무지개 담요가 출시되었어요.
한림수직의 제품들은 대부분 까다로운 작업 공정을 거쳐야 탄생할 수 있는데 이 점이 한림수직의 품질력을 나타내는 지점이기도 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한림수직 상품들을 복원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들을 반복하면 옛 한림수직이 그랬듯 한림수직의 성장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
|
한림수직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이시돌목장의 양들. |
|
|
코: 김명열 명장님을 비롯해, 당시 한림수직에 근무하셨던 분들은 한림수직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계셨나요? 또, 그 분들은 재생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
|
|
한: 김명열 장인은 17살 때 한림수직에서 일을 시작한 후 13년간 근무했고, 아일랜드에서 제주까지 뜨개질을 가르치러 온 로저리 수녀와 다양한 패턴 개발과 상품화를 도맡았어요. 수녀들이 가지고 온 영어로 된 뜨개질 책을 함께 보면서 “케이블’’, ‘’크로스” 같은 단어를 배웠고, 김명열 장인은 눈치껏 영어를 알아들었다고 해요. 한 코 한 코 정성스레 가르치며 “오케이’’, ‘’굿” 같은 칭찬을 해주던 목소리가 아직도 또렷하다고 하네요. 한림수직센타에서 뜨개질을 배운 동료가 5명 정도 있는데, 김명열 장인이 그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대요.
나중에는 상품의 퀄리티를 확인하는 최종 검수자가 되었는데, 김명열 장인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한림수직 오리지널 라벨을 붙일 수 없었다고 해요. 검수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은 김명열 장인이 그 자리에서 바로 고쳤기 때문에 완성된 옷은 반드시 작업하고 남은 실과 함께 납품해야 했대요. 같은 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수선한 부분이 티가 나니까요. 이를 지키지 않는 작업자에게 엄격하게 대하고, 워낙 꼼꼼한 검수 탓에 원망 아닌 원망을 듣기도 했대요.
한림수직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이봉선 할머니는 스물다섯에 한림수직에 입사해 예순하나에 퇴직했는데요. 할머니의 업무는 위탁으로 스웨터를 납품하는 도내 여성들을 찾아가 실을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 완성된 스웨터를 거둬 오는 것이었어요. 15일과 25일, 매달 두 번씩 운전기사가 운행하는 차를 타고 섬의 온 마을을 한 바퀴 돌았죠. 이봉선 할머니가 한림수직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녀님이 본인을 신임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수녀님이 일 이야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할 때 할머니와 얘기하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고, 밖으로 얘기가 돌지 않았다고요.
김명열 장인은 아일랜드 수녀들에게 뜨개질을 처음 배웠던 때와 한림수직에서 근무할 당시 직원들에게 뜨개질 하는 법을 가르쳤던 때가 떠오른대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또 다시 누군가에게 ‘한림수직 스타일 뜨개질’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다고요. 또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로 인해 옛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서 기쁘기도 하고요. 자신이 지닌 한림수직에 관한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
|
|
한림수직에 관한 모든 것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김명열 장인. |
|
|
코: 수제자 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수제자 양성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예를들어 클래스 열기, 수제자 수 늘리기 등)이 있나요? |
|
|
한: 옛 한림수직에서는 고객들이 ‘한림수직센타’에 직접 방문해 치수를 재고 원하는 패턴을 골라 몸에 딱 맞는 상품을 주문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그 방식을 재현하며, 구전으로 남은 한림수직 수편 기술을 잇기 위해 한림수직 장인과 그 기술을 이을 수제자 발굴을 진행했어요.
2022년에는 한림수직의 기술력을 잇는 ‘장인니팅스쿨'을 운영해 김명열 장인과 4인의 수강생을 선발했고, 2023년 봄에는 한림수직 장인이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고급 수편 상품 ‘장인니팅라인’을 오픈했지요. 그리고 2023년 겨울, 장인의 기술력을 전수받은 수제자가 손뜨개로 작업한 뒤 장인이 꼼꼼하게 검수한 ‘장인니팅라인 사전제작’ 상품을 선보였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장인니팅스쿨의 수강생 4명이 제작한 것으로, 지난 1년간 장인니팅스쿨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김명열 장인의 수제자로 거듭나 6개월 간 베스트, 스웨터, 카디건을 1벌씩 제작했어요.
내년에도 수제자 양성이 계속될 예정인데요. 지난 1년 간 운영한 장인니팅스쿨 1기 과정과 한림수직 프리랜서 니터 활동을 지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제자를 양성할 예정입니다. 또 과거와 현재를 잇고 수편 상품이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도록 장인니팅라인 상품을 늘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림수직의 가치와 기술력을 전하고자 합니다. |
|
|
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의 세대와 앞으로의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메세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
|
한: 한림수직을 시작했던 맥그린치 신부님은 척박했던 제주의 여성과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림수직이라는 브랜드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약 46년의 세월 동안 제주에서 명품 브랜드라고 불리며 성장하게 되었죠. 한때 1,300명의 여성이 일했던 한림수직은 맥그린치 신부님이 처음 생각하셨던 일자리 창출의 목적을 충분히 했던 브랜드였어요. 한림수직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문을 닫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림수직은 그 쓸모를 다 했기 때문에, 즉 시대의 쓰임이 끝났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봐야 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의 시대는 로컬의 이야기들이 부흥하고 있고, 대중이 아니라 개성과 취향이 중요시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어요. 이런 시대라면 한림수직이 다시 시대에 맞는 쓰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다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브랜드가 되고자 해요. 고용 취약 계층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편중된 제주의 산업, 그리고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문제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한림수직이 던질 수 있는 메시지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한림수직을 복원하는 것은 한림수직만이 가지는 가치까지 복원하는 과정이에요. 구전으로만 떠돌던 한림수직만의 니팅법이 사라지지 않도록 한림수직에서 근무했던 장인을 발굴하고 장인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여성들을 선발했던 과정은 오랜 시간과 기술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매년 한정된 수량을 판매하는 것은 대량 생산과 물질주의를 지양하며, 우리가 만들고 소비할 수 있는 적당한 수량을 생산하고 운영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한림수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로부터 공통으로 나오는 단어들이, ‘품질, 추억, 소중함’이에요. 하나의 브랜드를 통해 세대 간 공통의 공감대와 정서적 연결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한림수직만이 가진 특징이기도 해요.
|
|
|
한 때 1,300명의 여성과 청년이 일했던 한림수직. |
|
|
한: 옛 한림수직 제품들은 현재도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물려받으며 전달되고 있고, 중고마켓에서 한림수직 제품을 찾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오랫동안 사랑받은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품질력, 클래식한 디자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거예요.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이 한림수직의 품질력을 고스란히 복원하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올해는 장인과 그 수제자가 손으로 직접 뜬 장인니팅 라인과 니터들이 직접 작업할 수 있도록 한 수편사를 제시하며 손뜨개 제품을 사랑하는 분들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기도 하죠.
앞으로는 한림수직의 기술력을 잇는 수제자들을 꾸준히 육성하고 확대할 예정이고, 한림수직만의 공장도 오픈하며 독립 법인으로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한림수직 제품을 다시 유럽 등으로 수출하는 것도 추진할 예정이에요.
한림수직을 제대로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옛 한림수직이 그랬듯이 지금의 제주와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브랜드로 성장할 계획입니다. |
|
|
마커로 넘어가기 전에 코와단이 한 가지 부탁을 드려요🤗
바로바로! 닉네임 설정인데요.
기존에 코와단 구독시 닉네임을 따로 기입하지 않게 설정했었답니다.
그러나 단원님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닉네임 설정의 니즈를 느꼈어요.
아래 버튼을 눌러 구독하신 메일과, 원하는 닉네임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혹은 직접 여기를 눌러 직접 설정할 수도 있답니다! |
|
|
이번 마커는 단원님의 이야기를 걸어드릴게요. 벌써부터 너무 귀엽죠?💖👶
코와단 11호를 읽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취미를 즐기기'를 실천해 주셨어요.
아기 때 입히고 이제는 작아져서 입지 못하는 달리아 롬퍼의 밑부분을 잘라내고 자투리 실로 고무단과 프릴을 만들어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답니다!🤗 |
|
|
오늘 코와단의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뜨개가 취미를 넘어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코와단과 뜨개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면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코와단은 매월 둘째주, 넷째주 월요일에 발행돼요🧶
|
|
|
코와단은 광고 및 협업에 열려있습니다.
메일로 제안 주시면 긍정적으로 검토 하겠습니다.
또한, 피드백을 남겨주신다면,
코와단이 꼼꼼하게 읽어보고
다음 뉴스레터에 반영하겠습니다💌
|
|
|
|